아침공감
한 이십년 전엔 오후 시간이면 동네 아이들이 골목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치곤 했다. 룰은 엉터리였다. 원래대로라면 네트 넘어 상대방의 코트에
셔틀콕을 때려 넣어야 득점이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서
‘배드민턴 못 치는 녀석’이 되었다. 네트는커녕 제대로 그어진 코트의 경계도 없어
룰을 따지는 것이 우습지만 그랬다. 그렇다면 잘 치는 사람은 누구냐.
바로 잘 받아주고, 잘 넘겨주는 사람이었다.
비틀비틀 힘없이 요상한 각도로 날아오는 셔틀콕을 잘 받아 상대방이
치기 쉬운 높이와 속도, 그리고 각도로 돌려준다. 줄곧 허공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구 하나 뛰지 않고 주춤주춤 움직이며 라켓을 휘두르기보단 갖다댄다.
통~ 통~ 주고받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진다. 운 좋게 셔틀콕은 떨어지지 않고
두 사람의 라켓 사이를 오간다. 열 번 정도 왕복할 때쯤, 상대방이 말한다.
“너 배드민턴 진짜 잘 친다!” 한심해 보이는 광경이지만 당시는 그게 잘 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오래 주고받으며 ‘우리 진짜 배드민턴 잘 치는 것 같다’는 기분을 즐기는 것이다.
상대를 이기겠다고 치기 어려운 각도로 세게 셔틀콕을 날려 점수를 따면
“이렇게 칠 거면 너랑 안 할래”라고 비난받았다.
그러면 “알았어. 이젠 잘할게”라며 사과했다.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그게 게임의 규칙이었다.
배드민턴만의 경우는 아니다. 많은 것들이 그랬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오래 하는 것이었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술래잡기건, 숨바꼭질이건 어느 한쪽만 계속해서 이기면 곧장 ‘재미없어’가 선언되었다.
그러면 규칙을 바꿔야 했다. 잘하는 아이가 있는 편에선 못하는 아이를 데려갔고,
그래도 계속 ‘쫄리는 편’에겐 절대 무적의 ‘깍두기’를 얹어주면서까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모두의 재미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재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재미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래서 누가 이겼냐?’뿐이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패배하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없다기보다는 모두들 없다고 말한다.
부질없지만, 배드민턴을 치던 때가 종종 그립다.
세상이 어쩌고저쩌고, 룰이 원래 어떻고를 떠나, 그저 오래 셔틀콕을 주고받는 것으로
행복했던 때가 다시 오면 좋겠다.
* 만화가 김보통의 칼럼 <김보통의 노잼 노스트레스> 중에서 따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