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22화 서로의 등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가족
그대아침
2024.10.22
조회 180
일주일에 세 번, 아이를 봐주러 엄마가 집에 온다.
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가 집에 와서 산후조리를 해줬다.
그 후로도 모든 게 서툰 딸이 불안했는지,
아니면 첫 손주가 너무 예뻤는지 일주일에 몇 번씩 와서 요리,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도 해주고 아이도 봐줬다.
그런 엄마 덕분에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벌써 6년째 엄마는 우리 집으로 출근 중이다. 

설거지를 끝낸 엄마가 라디오를 켜자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제 점심 전까지 나는 작업을 하고 엄마는 청소를 한다.
우리 사이의 침묵은 공기 같은 거여서 각자의 공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엄마는 내 방을 청소할 때도 말없이 걸레질을 하다 가끔 작업하는 내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선을 느낀 내가 뒤돌아보면 옆에 다가와 만화 원고들을 슬쩍 쳐다보다가
본래는 책상 위에 쌓인 먼지를 찾으려 했다는 듯 걸레를 밀며 밖으로 나간다.

엄마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평생을 고생만 하며 견뎌온 얼굴엔 메마른 표정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엄마 얼굴을 보는 것보다 등을 보는 게 익숙했다.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수백 개의 자루를 박으며 공처럼 굽어지던 등.
한 손에는 동생을, 다른 한 손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시골길을 걸어가던 억센 등.
매일 밤 끝도 없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들으며 한없이 내려앉던 등.
이른 저녁 홀로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보며 어둡게 그늘지던 등.
엄마의 등은 그 메마른 얼굴보다 더 많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소파 끝에 서서 고목이 돼버린 엄마를 바라본다.
살짝 열린 베란다 창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나는 웅크린 채 잠든 엄마에게 살며시 담요를 덮어준다. 


*류승희의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